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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가옥의 유령 :조예은 소설



조예은 지음
현대문학
2024
나는 그곳에 초대받은 손님이자
출구를 찾는 도망자이며
영원히 귀속되는 유령이 되고 말았다

오랜 시간 피와 비명을,
비밀과 불을 머금고 버티며 살아 있는 집!
4대에 걸친 적산가옥에 감춰진 괴기한 수수께끼들

일제 강점기, 조선 땅에 자리 잡은 유복한 일본인 상인 가네모토와 그의 외아들 유타카는 조선인 간병인인 준영에게는 밉고 저주스러운 존재다. 피식민지 백성으로서 생존에 허덕이는 준영에게 가네모토의 붉은담장집은 부의 극치이자 원망스러운 일재의 잔재를 상징한다. 병약한 탓에 예민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자해로 드러내는 줄로만 알았던 유타카가 실은 가네모토의 양자로 그의 아버지에게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준영은 유타카에게 연민이 뒤섞인 유대감을 느낀다. 이야기는 2020년대 현재 시점으로 전환되며, 준영의 외증손녀인 내(현운주)가 결혼을 빙자하여 사망 보험금을 노리는 남편 우형민의 은근한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상황을 보여준다. 수 세대를 거슬러 붉은담장집에 존재해온 유타카의 망령은 내 앞에 수시로 그 존재를 드러내고 나는 몹쓸 망령 때문에 자신이 미쳐간다고 생각한다. 꿈속에서 나는 외증조모가 되어 유타카의 실체를 알게 되고, 마침내 유타카는 나에게 마음속에 품어왔던 말을 속삭인다. “아버지는 내가 죽일 거야.” 이렇게 우리 역사의 격동의 시점에서 한 가문의 어둡고 처참한 비밀과 초자연적 현상을 독특한 조예은식 호러로 그려낸 수작이다.

조예은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죽은 자들이 삶에서 마무리 짓지 못한 감정은 과거로 뭉뚱그려지지 않고 현재를 침범한다.”고 밝히며 “비열하고 희미하게라도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죽은 자들의 “그 지독함과 애달픔이 좋다”고 토로한다. 「발문」에서 “공포심과 기이함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섬세한 아름다움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마음”이 조예은 소설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김청귤)이라고 말한 것처럼, “하나의 장면이 마음에 깊이 남는, 다 읽고 나서도 며칠 동안 그 장면이 불쑥 떠오르는” 『적산가옥의 유령』은 확실히 우리에게 뚜렷하고 오래 지워지지 않는, 서늘한 ‘온기’를 선사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적산가옥에 초대받은 손님으로, 읽는 중에는 적산가옥에 갇혀 출구를 찾는 도망자로, 다 읽은 후에는 적산가옥의 일부에 영원히 귀속되는 유령”이 되는, 그야말로 시공을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경험으로 삶의 성찰을 가능하게 만든다.

“집은 자신의 벽에 깃든 모든 역사를 기억한다.
안에 살던 사람은 죽어도 집은 남는다. 오히려 죽음으로써
그 집의 일부로 영원히 귀속된다.
먼저 무너뜨리지 않는 한 집은 누군가의 삶을 담으며 존재한다.”